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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뮤칼럼

오디오가 청취를 만든다

2007.04.17 18:44

하이파이뮤직 조회 수:7626 추천:390



오디오가 청취를 만든다


이상 현상이 하나있다. 그렇게 뽕짝을 좋아하고 아는 노래도 뽕짝뿐이라서 노래방에서 뽕짝만 부르는 분이 집에 고급 오디오를 들여놓았다고 해서 찾아가기만 하면, 죽어라고 고악기로 연주한 스칼라띠, 바하, 모차르트만 틀어주고 흡족해 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집에서 나와 노래방이라도 가랍시면 어김없이 뽕짝이 흐른다. 나는 이럴 때가 가장 황당하다.


왜 이렇게 자신을 배반하는 불행한 일이(전문용어로 소외라고 한다) 생기는 것일까? 필자는 이 현상의 비밀은 바로 들여놓은 '기기'에 있고 이 하이엔드 기기로 인해 청취음반이 선택되고 제한된다는 점에 있다는 의미에서‘오디오가 청취를 만든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보통 음악애호가와 오디오애호가가 다르다고 한다. 장르에 따라 다르겠지만 음악애호가는 상이한 종류의 많은 음반을 골고루 즐기는 사람이고, 오디오애호가는 녹음이 잘된 음반을 소리위주로 즐기는 부류를 일컫는다. 그런데 가끔 우리 '하뮤'처럼 이 둘을 같이하려는 부류가 생겨나는데 사실 쉽지는 않으나 불가능하지는 않은 시도이다.


먼저 음악애호가들이 가진 오디오시스템은 한마디로 두 번 쳐다보기 조금 민망한 경우가 대부분으로, 이런 오디오 사용자를 오디오동호회에서는 안 붙여주거나(상대하지 않거나) 음악지식을 높이 사서 깍두기 시켜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하이엔드 사용자는 이런 미드파이(Mid-Fi)가 지니는 장점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미드파이는 해상도나 분해력 그리고 정보량이 상대적으로 하이엔드에 비해 떨어지고 음역도 상대적으로 좁으며 착색도 심하기 때문에, 음원을 재생할 때 미세한 차이는 대충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음색이 부족한 곳에는 알아서 색도 조금 보강해주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녹음의 질이 떨어지거나 악기 소리가 빈약한 음반이라도 들을만한 소리를 내준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반대로 미드파이는 녹음이 아주 잘된 음반일지라도 미세한 소리의 차이는 그냥 지나쳐버리고 진한 음색도 알아서 빼주는 친절함으로 '소리'가 아닌 '음악'을 들려준다.

열거한 이런 미드파이의 단점은 음악을 중점으로 듣는 음악애호가에게는 장르나 녹음에 그리 구애받지 않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별 불만 없이 미드파이를 사용하는 음악애호가가 음반을 많이 보유하고 장르나 녹음에 상관없이 음악을 즐기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내 친구의 경우 산수이 리시버와 이름 모를 스피커로 어느 하이엔드로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기가 막히게 애시드 록(Acid Rock)을 잘 들려준다.

하지만 하이엔드의 경우를 보면, 하이엔드의 미덕인 해상도, 분해력, 공간감이나 분리도가 이런 미덕을 갖추지 못한 음반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안겨준다. 보통 희대의 미성인 나훈아의 명곡 ‘잡초’라거나 남진의 ‘미워도 다시 한번’, 배호의 ‘안개낀 장충당공원’같이 주옥같은 곡을 하이엔드 오디오로 재생해 보면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썰렁한 소리에 기가 찬 표정을 짓고 옷깃을 여미게 된다. 하이엔드 오디오의 분해 능력이란 분석적이고 비판적임을 의미하기에 음반에 드러나는 녹음상의 미세한 잘못이나 연주의 문제를 확실하게 지적한다. 그리하여 좋은 소리를 들려주지 못하는 음반은 그 오디오가 이상한 소리를 들려주기에 집에서 듣는 음악의 목록에서 축출되게 되는 것이고, 나훈아를 즐겨 부르시고 심수봉을 즐겨 들으시던 그 분은 호르디 사발이나 필립 헤르베에라는 그 분의 삶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던 오랑캐의 음반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이엔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가끔 재미있는 점을 발견하게 되기도한다. 우리 집 하이엔드 오디오에서 우습게 혹은 바보같이 나오던 음반이 다른 집 하이엔드에서 기가 막히게 재생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당혹스러운 사건이 바로 하이엔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들려주는?) 것이다. 즉 “나는 작년 여름에 네 오디오가 한 칼질을 알고 있다!”고 말해주는 대목으로 이는 하이엔드 오디오의 한계이자 동시에 가능성을 말해주는 일이기도하다. 아주 잘 튜닝된 오디오에서는 가요조차도 무척 아름답게 재생하는 것을 목격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로 보건데 하이엔드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은 아마 튜닝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생각해보자면 지금의 ‘분석’의 하이엔드에서 더 올라가면, 아니 세팅과 매칭을 더 잘 하면 ‘비판적 분석’과 ‘배제와 선택’을 강요하던 오디오가 ‘정합적 통합’을 하는 음악 재생기로 거듭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이엔드 오디오를 ‘음향 분석기’가 아닌 ‘음악 재생기’로 재생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오디오를 구동하는 사람이 시선을 음향이 아닌 음악으로 맞출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하이엔드의 엔드(end)라는 말은 ‘기계로서 끝’에 위치한다는 말이다. 더 이상 손볼 것이 없는 기기. 이런 기기가 사용자의 집으로 와서 자리를 잡으면 그 ‘끝’에서 ‘음악’으로 새로 시작해야 한다. 만약 그 ‘끝’이 계속 ‘끝’을 주장한다면 그냥 ‘끝장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디오라는 ‘도구’가 음악이라는 ‘의미’를 침해하는 일은 이 즈음에서 ‘끝’내도 좋을 것이고 '음악'과 '오디오'는 이렇게 '끝'과 '시작'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글    하이파이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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